영화 서울의 봄 감상 후기 (하나회, 12·12 반란, 국방장관)
결말을 이미 아는 관객 앞에서 긴장감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영화가 실화의 결말을 알고도 몰입하게 만드는 방식부터 짚어본다.
하나회라는 조직이 왜 그토록 무서운가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하나회(一會)를 그냥 군 내 사조직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회란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후원 아래 육군사관학교 11기 출신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비밀 사조직입니다. 쉽게 말해 군복을 입은 패거리 정치 집단이라고 보면 됩니다. 영화가 이 조직의 작동 원리를 보여주는 방식이 인상 깊었습니다. "너는 나고, 나는 너다." 이 한 문장이 하나회의 정체성을 압축합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소름이 돋은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하나회는 군의 계급 체계를 사실상 무력화했습니다. 아무리 별볼일 없는 장교라도 하나회에 속하는 순간 전두광, 노태관 같은 실세와 하나가 됩니다. 이 구조는 평범한 인간의 욕망, 즉 소속되고 싶다는 본능을 정치적 무기로 바꾼 것입니다.
역사 기록을 보면 6사 11기, 즉 육군사관학교 11기 출신들은 6·25 전쟁 중 안전한 후방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전쟁터를 직접 누빈 갑종 간부후보생들보다 실전 경험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남아 있습니다. 그 결속감이 더욱 강해진 이유가 바로 이 결핍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채우지 못한 것을 집단 충성으로 메운 셈입니다. 반란수괴죄(叛亂首魁罪)란 무력으로 국가 권력을 찬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한 행위의 주모자에게 적용하는 죄목인데, 1997년 대법원은 전두환·노태우에게 이 죄를 적용해 유죄를 확정했습니다. 역사가 이미 심판을 내린 것입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형법 제87조)
12·12 반란을 가능하게 만든 두 개의 구멍
영화에서 가장 분노하게 되는 인물은 황정민이 연기한 전두광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국방부 장관 오국상 역의 김의성을 보면서 더 치가 떨렸습니다. 전두광은 악하기라도 합니다. 오국상은 그냥 무능했습니다. 무능한 사람이 결정권을 쥔 것, 이것이 12·12 반란(反亂)의 본질적인 조건 중 하나였습니다. 반란이란 합법적인 국가 권력에 대항해 무력으로 지배권을 빼앗으려는 행위를 말합니다.
정상호 육군 참모총장이 국방부 장관을 찾아가 전두광을 제어해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숨을 멈췄습니다. 그 순간 장관이 단호하게 손을 썼다면, 반란은 싹도 트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머뭇거렸습니다. 영화 속 대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돕니다. "국방부 장관이 뭐 나라 걱정하는 사람입니까." 저도 처음엔 이게 과장된 연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찾아볼수록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영화가 12·12 반란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적 요인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하나회의 조직력: 군 전체에 퍼진 눈과 귀가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정상호가 국방부 장관을 찾아간 사실도 곧바로 전두광에게 전달됐습니다.
- 합동수사본부장이라는 직위: 10·26 이후 박정희 시해 사건을 전담하면서 전두광은 정보를 쥔 가장 강력한 실세가 됐습니다. 이것이 법적 권한이 아닌 정보 권력이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 국방부 장관의 부재: 결정적 순간에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이 보신(保身), 즉 자기 몸 하나 지키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총소리가 나자 가족을 데리고 택시로 도망쳤다는 장면이 그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 분산된 지휘 체계: 수도권 방위의 핵심 세 축인 수경사령관, 특전사령관, 육군헌병감이 각개격파 당했습니다. 협조 체계가 무너지자 반격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쿠데타(coup d'état)란 기존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제가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것은 "이렇게 하찮은 계획이었구나"라는 충격이었습니다. 전두광의 반란은 처음부터 흔들렸고, 중간에 몇 번의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는데 그 기회를 막아야 할 자리에 하필 무능한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 한 편이 역사 교과서보다 오래 남는 이유
주말에 부모님을 모시고 두 번째로 극장에 갔습니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부모님 옆에서 같은 장면에서 또 눈물이 났습니다. 이태신이 혼자 권총 하나를 들고 반란군 앞으로 걸어 나가는 마지막 장면, 광화문 앞 이순신 장군 동상과 교차되는 그 연출은 말로 설명이 안 됩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감정은 정리된 글 열 편을 읽어도 나오지 않습니다.
더 씁쓸한 것은 영화 밖 현실입니다. 제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군 인트라넷의 역대 지휘관 목록에 그들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는 이야기가 귀에 익습니다. 온라인에 전두환을 여전히 찬양하는 목소리가 버젓이 존재하는 현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씁쓸함의 밀도가 달라졌습니다.
헌정 질서(憲政秩序)란 헌법이 규정한 국가 운영의 원칙과 절차를 말합니다. 12·12 반란은 그 헌정 질서를 총구로 짓밟은 사건이었습니다. 영화는 기록이 아니라 감각으로 그 사실을 전달합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단순히 훌륭한 수준을 넘어, 그 시대를 살아 숨 쉬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고증 자료와 관련해서는 국가기록원의 12·12 관련 문서 아카이브에서도 당시 상황을 보완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국가기록원)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캐릭터의 내면 고뇌가 좀 더 세밀하게 표현됐더라면 한국 영화사에 둘도 없는 걸작이 됐을 거라는 생각은 지금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10점 만점에 7점은 확실합니다.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역사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한 편에 무너졌다면, 아직 <서울의 봄>을 보지 않은 분들에게 권합니다. 극장이 아니어도 됩니다. 다만 혼자 보는 것보다는 부모님과, 혹은 12·12를 단순한 사건으로만 알고 있는 누군가와 함께 보시길 추천합니다. 보고 난 뒤 대화가 생기는 영화입니다. 그 대화가 이 영화의 진짜 결말일 수 있습니다.
--- 참고:https://youtu.be/ot2NgQ1V7m0?si=25D-R5l7ocbfZRS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