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퍼맨 2025 감상 후기 (패배, 렉스루터, DC 리부트)
슈퍼맨 2025는 시작하자마자 슈퍼맨이 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온몸의 뼈가 부서져 강아지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장면. 저는 그 첫 3분을 보면서 제임스 건이 이 영화에서 뭘 하려는지 바로 감이 왔습니다. 이건 그냥 슈퍼히어로 오락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패배에서 시작하는 슈퍼맨 서사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캐릭터 서사(narrative)란 주인공이 어떤 결핍과 약점을 가지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흐름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히어로가 처음부터 완벽하면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스파이더맨이 하늘을 날 수 없어서 거미줄로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웹 스윙(web-swing)을 개발했고, 그 한계가 오히려 캐릭터의 정체성이 됐습니다. 웹 스윙이란 거미줄을 건물에 걸어 공중을 이동하는 스파이더맨만의 이동 방식으로, 그의 가장 상징적인 능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반면 슈퍼맨은 처음부터 너무 강했습니다. 날고, 레이저를 쏘고, 총알도 막아냅니다. 그러니 창작자 입장에서 슈퍼맨을 위기에 빠뜨리려면 크립토나이트(Kryptonite)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크립토나이트란 슈퍼맨의 고향 행성 크립톤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물질로, 이것에 노출되면 슈퍼맨은 초능력을 잃고 인간처럼 취약해집니다. 역대 슈퍼맨 영화가 이 약점 하나에 지나치게 기댄 것도 사실입니다.
제임스 건은 그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습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이미 패배한 슈퍼맨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갖고 있던 "어차피 슈퍼맨이 이기겠지"라는 기대를 초반에 꺾어버린 겁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그 첫 장면에서 느낀 건, 아 이제 다른 슈퍼맨 영화를 보게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었습니다. 영화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건 슈퍼맨이 지구를 구하는 장면이 아니라 강아지를 구하고 아이를 안아주는 장면입니다. 그때 느낀 건 단순히 "착한 히어로"를 묘사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른이 다음 세대와 약한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슈퍼맨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켄트 부부의 묘사도 이런 맥락에서 좋았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켄트 부부는 위대한 영웅을 키워낸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냥 도시로 취업하러 간 아들 걱정하는 시골 부모입니다. 로이스 레인이 크립토나이트 중독으로 쓰러진 슈퍼맨을 켄트 부부 집에 데려갔을 때, 사춘기 클라크의 방이 잠깐 나옵니다. 팝 음악 포스터가 붙어 있는 그냥 평범한 10대 소년의 방. 그 장면에서 저도 로이스와 함께 뭔가 안도감 같은 걸 느꼈습니다. 이 사람도 그냥 사람이구나, 싶어서요.
렉스루터가 슈퍼맨을 게임처럼 다루는 이유
이번 영화에서 렉스루터를 연기한 니콜라스 홀트는 역대 영화화된 렉스루터 중 가장 유능한 버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시 아이젠버그가 못했다는 게 아닙니다. 아이젠버그는 자기 버전에서 잘했습니다. 다만 이번 렉스루터는 단순히 나쁜 놈이 아니라, 슈퍼맨에 대한 집착이 극도로 논리화된 인물입니다.
렉스루터는 슈퍼맨의 전투 패턴을 모두 분석해 데이터로 저장하고, 전투 중에 마치 게임 커맨드를 입력하듯 지시를 내립니다. 이 장면이 처음에는 좀 황당하게 느껴졌는데, 직접 보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건 되게 날카로운 설정입니다. 힘에만 의존하는 캐릭터는 기술적으로 허점이 많습니다. 패턴이 읽히면 그냥 잡몹이 됩니다. 슈퍼맨이 그 잡몹 신세가 되는 걸 렉스루터를 통해 보여준 겁니다.
렉스루터의 동기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슈퍼맨을 보면서 느낀 좌절과 열등감. 그걸 무너뜨리고 싶다는 욕망. 솔직히 저도 슈퍼맨 같은 존재에 대해 비슷한 불편함을 느낍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저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가 어떤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그것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슈퍼맨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에게 의도를 씌우고 자신의 프레임으로 그를 이용하려 합니다. 날아다니는 핵폭탄 같은 존재를 가만히 둔다는 게 과연 맞는 건지, 저는 아직도 그 질문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로이스 레인이 슈퍼맨을 인터뷰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는 자프루를 선량한 피해자로, 보라비아와 미국 행정부를 악당으로 단순화하지만, 로이스는 "슈퍼맨은 미국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동해선 안 된다"고 따집니다. 그 지적이 저는 굉장히 적절했습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국제 분쟁에서 슈퍼맨처럼 선악을 단순하게 나누는 태도는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슈퍼맨이 착각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물음이 영화 내내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DC 리부트, 이번엔 다를 수 있는 이유
DC 확장 유니버스(DCEU)란 워너브라더스가 2013년부터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 DC 코믹스 캐릭터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어 제작한 영화 시리즈를 말합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 주도로 시작됐지만 저스티스 리그의 흥행 실패 이후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습니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제임스 건이 DC 스튜디오 공동 대표로 합류해 새 세계관을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 이번 슈퍼맨 2025입니다.
제가 이전 DCEU를 떠올릴 때 가장 큰 문제라고 느꼈던 건 너무 진지하고 어두웠다는 겁니다. 잭 스나이더의 미학 자체는 존중합니다. 멋진 장면을 만드는 능력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저스티스 리그에서 슈퍼맨이 복귀하자마자 나머지 멤버들이 전투에서 밀려나는 장면은, 그게 연출상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결국 슈퍼맨 서사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스나이더 컷을 봐도 그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네 시간으로 늘린다고 이야기가 좋아지는 건 아니니까요.
이번 슈퍼맨 2025에서 저를 가장 기분 좋게 한 건 저스티스 게임 멤버들의 등장이었습니다. 그린 랜턴(Green Lantern)이란 특수 반지를 통해 의지력을 에너지로 변환해 어떤 물체든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DC 코믹스의 히어로입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의 그린 랜턴은 자기 사명을 엄청 진지하게 떠들면서 실제로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이죽거리는 캐릭터로 나옵니다. 그 미쳐버린 헤어스타일과 함께. 직접 보면서 저는 속으로 이게 맞다, 그린 랜턴은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허세 덩어리 캐릭터를 허세 덩어리로 그대로 구현한 게 반가웠습니다.
SNS를 통해 슈퍼맨이 하루아침에 악당으로 둔갑하는 장면도 저는 꽤 씁쓸하게 봤습니다. 렉스루터가 원숭이를 고용해 악플 부대로 활용하고, 여론이 순식간에 뒤집히는 장면이 요즘 현실과 너무 닮아 있었거든요. 과거 세대의 슈퍼맨은 어딜 가든 환영받았지만, 지금 슈퍼맨은 SNS에 올라오는 자신에 대한 악성 댓글을 봐야 합니다. 그 설정이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제임스 건이 영리하게 현실을 반영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DC 코믹스 공식 사이트(출처: DC Comics)
출처: https://youtu.be/uVhGUOZvJto?si=kEW9JmpzRm8_x_H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