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이타닉 감상 후기(집단감상, 로즈성장, 위대한사랑)

영화 타이타닉


배가 침몰한다는 결말을 모두가 알고 극장에 들어간다. 제임스 카메론이 그 알려진 결말 앞에서 어떻게 긴장을 만들어냈는지부터 짚어본다.


집단감상이 증명한 것, 명작은 취향을 넘어선다

영화관에 들어섰을 때, 제 주변 관객 구성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왼쪽에는 핸드폰을 수시로 확인하는 커플, 오른쪽에는 처음부터 미동도 없이 조용한 두 분, 뒷자리에는 15세 관람가 기준으로 겨우 통과한 10대 학생들이었습니다. 취향도, 나이도, 영화 보는 스타일도 전혀 달랐죠.

그런데 후반부 배가 본격적으로 침몰하기 시작하는 장면에 이르자, 왼쪽 커플은 핸드폰을 완전히 내려놓았습니다. 말 한마디도 없이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오른쪽 두 분은 조용히 훌쩍이셨고, 왼쪽 커플 여성분은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뒤에서는 10대 학생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명작은 명작이네." 그 말이 제게 가장 강하게 남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집단감상(collective viewing experience)이 가진 힘입니다. 집단감상이란 같은 공간에서 타인과 감정을 동시에 공유하는 관람 방식으로, 혼자 스트리밍으로 보는 것과는 감동의 밀도 자체가 다릅니다. 돌비(Dolby) 서라운드 음향으로 울려 퍼지는 셀린 디온의 'My Heart Will Go On'은 귓속이 아니라 몸 전체로 느껴졌고, 옆 사람의 숨소리와 훌쩍임이 제 감정을 더 깊이 끌어내렸습니다. 가정용 화면으로는 절대 대체할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1997년 개봉작이 2023년에도 26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무너뜨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이 영화가 단순히 잭과 로즈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를 설계하고 죄책감에 수장을 선택한 설계자, 자신의 판단 착오를 통감하며 조용히 걸어 들어가는 선장, 침대에서 아이들을 안고 파도를 맞이하는 엄마, 자기 방에서 밀려오는 물을 바라보며 서로를 안는 노부부, 끝까지 연주를 멈추지 않는 음악가들. 이 영화는 단역 한 명 한 명에게도 서사를 부여합니다. 그러니 이름도 모르는 인물의 죽음 하나에도 객석이 조여드는 겁니다.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에 관한 역사 기록에 따르면(출처: History.com), 1912년 4월 15일 새벽 약 1,5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 숫자를 통계가 아닌 개별 인간의 얼굴로 복원하려 했고, 그 시도가 26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로즈의 성장, 구원은 누가 해주는 게 아니다

이번 재관람에서 가장 새롭게 읽힌 것이 바로 로즈의 서사였습니다. 예전에는 잭이 로즈를 변화시킨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봤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캐릭터 아크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이 내면적으로 변화하거나 성장하는 궤적을 뜻합니다. 로즈의 캐릭터 아크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자기주도적입니다. 잭이 사랑 고백을 할 때 로즈는 밀어냅니다. 그런데 나중에 먼저 잭을 찾아가는 것은 로즈입니다. 약혼자가 배치한 구명정에 올라탔다가 다시 배 안으로 뛰어 들어온 것도 로즈입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말을 로즈 스스로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 대사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라는 게 보였습니다.

로즈가 잭을 살리기 위해 도끼를 찾아와 수갑을 내리치는 장면, 자기를 강제로 끌어가는 선원의 손을 때려내는 장면, 얼어붙는 바다 위에서 마지막 발버둥으로 호루라기를 불어 구조대를 향해 헤엄치는 장면. 이 모든 힘이 처음부터 로즈 안에 있었습니다. 잭은 그 힘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 사람이지, 그 힘을 심어준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잭은 로즈에게 어떤 존재였을까요? 저는 잭을 촉매(catalyst)로 봅니다. 촉매란 화학 반응에서 자신은 소비되지 않으면서 반응 속도를 높이는 물질을 뜻합니다. 잭은 로즈가 스스로를 열어가는 반응을 가속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과정에서 사라졌습니다. 이 구조가 이 영화를 단순한 러브스토리로 축소되지 않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로즈의 성장이 가진 힘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상류층 파티의 억압에서 스스로 이탈을 결심하는 장면: 누가 시킨 게 아닌 자기 선택
  2. 구명정에서 다시 배로 뛰어 돌아오는 장면: 생존 확률을 버리고 주체성을 택한 순간
  3. 얼음 위에서 포기 직전, 잭과의 약속을 떠올리고 호루라기를 향해 헤엄치는 장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다시 발화시킨 순간
  4. 80년간 혼자 이 사랑을 안고 살다가 자기 입으로 "그 그림 속 여자가 나입니다"라고 밝히는 장면: 자기 삶의 진실을 세상에 공표하는 마지막 주체적 선언

이 네 장면이 연결되는 걸 보면, 로즈의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전 관람에서 이걸 놓쳤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꽤 아쉽습니다.

위대한사랑, 한 사람의 일생을 움직인 이틀

타이타닉을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고 부르는 건 너무 식상한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그 말 말고는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잭과 로즈가 함께한 시간은 채 이틀이 되지 않습니다. 그 짧은 시간이 로즈의 이후 수십 년 전체를 지탱했습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할머니 로즈의 집 사진들이 잠깐 지나가는데, 비행기, 코끼리, 모험이 가득합니다. 잭이 로즈에게 해보고 싶다고 했던 것들을 할머니 로즈는 실제로 다 살아냈습니다. 그 삶의 원동력이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 하나였다는 것, 저는 이게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흥미롭습니다.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과 시간적 배열을 뜻하는데, 타이타닉은 현재의 노년 로즈가 과거를 회고하는 액자식 구성을 씁니다. 이 구조 덕분에 관객은 처음부터 잭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압니다. 그런데도 그 결말을 알면서 보는 내내 눈물이 나오는 이유는, 이 영화가 죽음보다 그 이후의 삶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로즈 할머니가 대양의 심장(Heart of the Ocean)을 세상에 돌려주지 않고 바다에 던지는 마지막 장면도 그래서입니다. 대양의 심장이란 영화 속 거대한 파란 다이아몬드로, 하클리가 로즈를 소유하려는 욕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것을 팔지 않고 수십 년을 버텼다는 건, 잭과의 사랑이 하클리의 물질적 세계를 끝내 이겼다는 선언입니다. 그 다이아몬드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하클리의 이야기가 아닌 잭 도슨과 로즈의 이야기만 남게 됩니다. 그것까지 이루고 나서야 할머니 로즈는 세상을 떠날 준비가 된 것이겠지요.

영화 흥행 기록으로 봐도 이 작품의 무게는 다릅니다. 박스오피스 모조(Box Office Mojo) 역대 흥행 순위에 따르면(출처: Box Office Mojo), 타이타닉은 2023년 현재도 역대 전 세계 흥행 TOP 5 안에 포함됩니다. 시리즈물도, 마블도 아닌 단독 작품이 90년대에 나와서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가 가진 힘을 숫자로 증명합니다.

제가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못한 이유였습니다.

출처: https://youtu.be/fkEDlbzJHrg?si=oF2WlXc0ku9VcF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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