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감상 후기 (루머팩트체크,제작비하인드,숨은의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에서 소녀의 이름을 빼앗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름을 잃는다는 설정이 왜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는지, 그 장치부터 들여다본다.


풍속업 루머, 실제로 파고들어 보니

이 영화를 한 번이라도 검색해본 분이라면 한 번쯤 마주쳤을 루머가 있습니다. 영화 배경이 성매매업소라는 것인데, 심지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이 그렇게 말했다는 얘기까지 함께 돌았습니다. 제가 이 루머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감독 본인이 직접 말했다는데 그냥 흘려듣기가 어려웠으니까요.

루머의 출처를 역추적해보면 마치야마 토모히로라는 일본 영화 평론가의 블로그로 연결됩니다. 그는 2002년 6월 21일자 프리미어 잡지에 미야자키 감독의 인터뷰가 실렸다고 주장하며, 해당 내용을 근거로 영화를 풍속업 중심으로 해석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야후재팬과 구글을 한참 뒤져봤지만 그 인터뷰 원문 이미지나 기사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실제 미야자키 감독의 프리미어 인터뷰는 2001년 9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평론가가 주장한 2002년 6월호와는 시점부터 맞지 않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이 루머에 대해 공개적으로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한 인터뷰도 저는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감독은 영화 개봉 전부터 일관되게 "친구의 딸을 위해 만든 영화"라고 밝혀왔습니다. 프랑스 영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세계의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명확하게 말했고요. 루머가 번진 뒤에 해명한 것이 아니라, 개봉 전부터 제작 의도를 밝혀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내러티브 프레이밍(narrative framing), 즉 관객이 어떤 맥락으로 이야기를 읽느냐에 따라 같은 장면도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루머가 잘 보여줍니다. 내러티브 프레이밍이란 동일한 정보를 어떤 틀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수용자의 인식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설령 배경 일부에 풍속업의 요소가 녹아 있다 해도, 그것이 곧 영화의 주제라는 결론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봅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지금 이 세상에서는 인간만이 살아갈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그리겠다는 의지가 이 영화에 담겨 있다고 보는 게 더 설득력 있습니다.

제작 비하인드, 알고 보면 더 놀라운 것들

미야자키 감독은 시골에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매년 여름 친구 가족을 그곳에 초대했습니다. 어느 해 여름, 친구의 열 살 난 딸을 보며 "지금은 이렇게 생기발랄한데, 이 험한 세상에서 계속 밝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고 합니다. 그 한 가지 걱정이 영화의 출발점이었고, 주인공 치히로가 열 살로 설정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개봉된 뒤 친구 부부는 "우리 딸을 계속 관찰하고 있었구나"라며 놀랐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 얘기를 처음 접했을 때 영화 전체가 다시 보였습니다.

가오나시(カオナシ) 캐릭터는 원래 다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단역에 불과했습니다. 가오나시란 '얼굴 없음'을 뜻하는 일본어로, 자아 없이 타인의 욕망을 흡수하는 존재를 상징합니다. 제작 도중 3시간 분량의 이야기를 공개 기한에 맞추기 위해 줄여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가오나시에 비중을 실어 새로운 서사 축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가오나시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었을 겁니다.

치히로가 치킨 뼈를 들고 있던 꽃다발 속 꽃은 스위트피(sweet pea)로, 꽃말이 "나를 기억해주세요"입니다. 이 디테일 하나만으로도 영화가 얼마나 세밀하게 설계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주제곡 "언제나 몇 번이라도"를 부른 기무라 유미는 당시 일본에서도 무명에 가까운 음악가였습니다. 그가 미야자키 감독에게 편지를 보내고, 감독이 답장으로 구상도를 동봉해 보낸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노랫말 중 "채워져야"라는 구절을 감독은 어른이 되며 사라지는 어린 시절 기억과 연결해 읽었고, 그것이 영화 주제와 맞닿는다고 느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동화(動畵) 작업, 즉 원화와 원화 사이를 연결하는 움직임 그림 작업의 일부를 한국의 DR무비에 외주로 맡겼고, 미야자키 감독은 그 작업에 상당히 만족했다고 합니다. 감사 인사를 겸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장충동 족발집 골목이 영화 속 골목과 닮아 있어 즐거웠다는 에피소드도 남아 있습니다. 사운드 설계 역시 치밀했습니다. 지브리 스태프들이 실제 온천에 가서 물 흐르는 소리, 바닥 청소 소리, 요리 소리까지 현장 녹음했고, 치히로 가족이 탄 차 소리는 동일 기종 차량을 섭외해 녹음했습니다.


영화가 실제로 말하려 했던 것

부모가 음식을 탐식하다 돼지로 변하는 장면은 제가 처음 봤을 때 그냥 징그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나면 무게가 다릅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돼지는 모두 먹어치우는 욕심 많은 생물이기 때문에 부모를 돼지로 설정했다"고 밝혔고, 버블 경제(bubble economy) 시기의 욕망을 상징한다고 직접 언급했습니다. 버블 경제란 자산 가격이 실제 가치를 크게 웃돌며 팽창하다 급격히 붕괴하는 경제 현상을 뜻합니다. 일본에서는 1991년 버블 붕괴(출처: 일본은행(Bank of Japan) 연구논문) 이후 장기 침체가 이어졌고, 감독은 그 시대의 욕망이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설정되었다고 지브리 공식 답변에서 명시했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개봉 15주년을 맞아 한 팬으로부터 편지를 받았고, 장문으로 답장했습니다. 치히로가 마지막 테스트에서 정답을 알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지브리는 "온천장에서의 고난과 역경을 통해 치히로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이 영화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두려움에 맞서며 성장한 평범한 소녀의 이야기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답변이었습니다.

강의 신 에피소드도 인상적입니다. 강의 신의 몸에서 나온 것들은 인간이 버린 쓰레기들이었고, 미야자키 감독은 실제 강청소에서 폐자전거를 발견한 경험을 이 장면에 녹였습니다. 그는 "돌에도 혼이 있다"고 말했고, "지금 이 세상에서는 인간만이 살아갈 수 없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애니미즘(animism), 즉 자연의 모든 사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세계관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애니미즘이란 인간 외의 존재에도 정신적 존재나 영혼이 내재한다는 신앙 체계로, 일본 신토(神道) 사상과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m3LlrXo6jKk?si=jMABfJd9Ijlwjg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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