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백 투 더 퓨처 감상 후기 (스토리텔링, 시간여행, 재개봉)

이미지
  z 1985년 작품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타임머신이 드로리안이라는 발상 때문만은 아니다. 시간여행물이 빠지기 쉬운 논리적 함정을 이 영화가 어떻게 피해 갔는지 살펴본다. 스토리텔링 — 단순한 설정이 명작이 되는 구조 백 투 더 퓨처의 플롯은 사실 한 줄로 요약됩니다. "과거를 바꾸면 미래가 달라진다." 이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전제가 어떻게 전 세계 3억 8,5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제가 직접 영화를 다시 들여다보니, 거기엔 철저하게 계산된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가 있었습니다.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과 순서를 설계하는 기법으로, 복잡한 설정도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뼈대 역할을 합니다. 마티 맥플라이는 낙천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주인공입니다. 빵셔틀 신세를 못 벗어난 아버지 조지, 세월에 지쳐버린 어머니 로레인, 유전자의 힘으로 아버지의 찌질함을 그대로 물려받은 누나까지 — 맥플라이 가족의 현재는 처참합니다. 그런데 이 설정이 그냥 배경 장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티가 1955년으로 이동한 순간, 이 모든 것이 퍼즐처럼 맞물리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첫사랑, 어머니와의 만남, 비프와의 관계가 전부 마티의 손에 달리게 되는 구조죠. 특히 인과율(Causality)이라는 개념을 영화가 얼마나 정교하게 활용하는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인과율이란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는 논리적 사슬을 뜻하는데, 영화는 과거의 작은 변화가 현재에 어떤 파급 효과를 미치는지를 마티의 손이 사라지는 장면 하나로 시각화합니다. 저는 이 장면이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합니다. 팜플렛 하나 못 가져온 게 아쉬울 정도로, 이 영화는 소장 가치가 있는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이 영화에서 택한 방식은 관객에게 정보를 미리 줘서 긴장감을 만드는 극적 아이러니(Dramatic Irony)입니다. 극적 아이러니란 관객은 알고 있지만 등장인물은 모르는 상...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감상 후기 (루머팩트체크,제작비하인드,숨은의미)

이미지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신기한 판타지 애니메이션으로만 느꼈는데, 다시 보니 완전히 다른 영화였습니다. 베를린 국제영화제(Berlin International Film Festival)에서 애니메이션 최초로 황금곰상(Golden Bear)을 수상한 작품이고, 일본에서는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을 넘어 역대 최고 흥행작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어린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증거는 꽤 많습니다. 루머부터 제작 비하인드까지, 제가 직접 자료를 뒤지며 정리해봤습니다. 풍속업 루머, 실제로 파고들어 보니 이 영화를 한 번이라도 검색해본 분이라면 한 번쯤 마주쳤을 루머가 있습니다. 영화 배경이 성매매업소라는 것인데, 심지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이 그렇게 말했다는 얘기까지 함께 돌았습니다. 제가 이 루머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감독 본인이 직접 말했다는데 그냥 흘려듣기가 어려웠으니까요. 루머의 출처를 역추적해보면 마치야마 토모히로라는 일본 영화 평론가의 블로그로 연결됩니다. 그는 2002년 6월 21일자 프리미어 잡지에 미야자키 감독의 인터뷰가 실렸다고 주장하며, 해당 내용을 근거로 영화를 풍속업 중심으로 해석했습니다. 문제는, 제가 야후재팬과 구글을 한참 뒤져봤지만 그 인터뷰 원문 이미지나 기사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실제 미야자키 감독의 프리미어 인터뷰는 2001년 9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평론가가 주장한 2002년 6월호와는 시점부터 맞지 않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이 이 루머에 대해 공개적으로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한 인터뷰도 저는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감독은 영화 개봉 전부터 일관되게 "친구의 딸을 위해 만든 영화"라고 밝혀왔습니다. 프랑스 영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세계의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명확하게 말했고요. 루머가 번진 뒤에 해명한 것이 아니라, 개봉 전부터 제작 의도를 밝혀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

넷플릭스 맨끝줄 소년 감상 후기 (드라마, 최민식, 흡입력)

이미지
6부작이라길래 가볍게 틀었다가 그날 밤 통째로 다 봤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맨끝줄 소년'은 열등감에 짓눌린 교수와 수상한 학생 사이의 심리 게임을 그린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최민식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볼 이유는 충분하지만, 막상 보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드라마, 대체 뭘 보여주려는 건가 국문학과 교수 허문호는 오래전 소설 한 편을 냈다가 혹평을 받은 이후, 새 작품을 내지 못한 채 강단에 서 있습니다. 겉으로는 교수지만, 속으로는 실패한 작가라는 자의식을 지우지 못한 인물입니다. 어느 날 과제로 받은 학생 소설 중 하나가 유독 눈에 띕니다. 강의실 맨 끝줄에 앉은 이강이 쓴 글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강의 소설이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글은 이강이 지금 겪고 있는 실제 상황을 그대로 옮긴 것이었습니다. 픽션(fiction)과 논픽션(non-fiction)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허문호라는 인물은 이야기에 끌려들기 시작합니다. 픽션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상상으로 구성한 서사 형식을 뜻하는데, 이 드라마는 그 경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가장 핵심적인 장치로 사용합니다. 원작은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 '맨끝줄 소년'입니다.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2012년 영화 '인 더 하우스(In the House)'를 만든 바 있습니다. 원작 영화는 두 사람이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아파트 창문들을 바라보며 "어느 집이든 들어갈 방법이 있다"고 속삭이는 열린 결말로 끝납니다. 희곡의 파멸적 결말과는 결이 전혀 다릅니다. 드라마 버전은 그 두 결말 사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는데, 그 위치를 스스로 확인해가며 보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연출은 '우리들의 블루스', '그 겨울 바람이 분다', '트렁크' 등을 만든 김규태 PD가 맡았습니다. 각본은 장명우 작가가 썼습니다. 제...

영화 레옹 감상 후기 (줄거리, 카타르시스, 조언)

이미지
레옹을 처음 본 게 극장이 아니라 감독판 블루레이였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유명한 액션 영화겠거니 하고 틀었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멈추지 못했습니다. 30년 전 영화가 지금도 재개봉 요청을 받는다는 게 처음엔 과장처럼 들렸는데, 직접 보고 나니 그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줄거리: 복수극으로 시작해 성장 이야기로 끝나는 영화 영화는 뉴욕의 어느 숲에 둘러싸인 레스토랑 장면으로 문을 엽니다. 브로커 토니가 레옹에게 살인 청부 의뢰를 건네는 장면인데, 분위기가 은밀하고 건조합니다. 레옹은 말이 없고, 일만 합니다. 타깃인 마피아 보스 존슨을 처리하는 방식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합니다. 저는 이 도입부에서 주인공이 단순한 킬러물의 주인공으로 그려지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웃집 소녀 마틸다의 가족이 마약 단속국 요원 스탠에게 몰살당하고, 마틸다가 레옹의 문을 두드리면서 영화의 결이 완전히 바뀝니다. 복수를 원하는 소녀와, 감정 없이 살아온 남자가 한 공간에 묶이는 구조입니다. 레옹은 마틸다를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살인의 기초를 가르쳐주기로 합니다. 감독판에는 일반판에서 잘려나간 장면들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마틸다가 레옹에게 감정을 고백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 장면 때문에 감독판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저는 이 장면을 오히려 레옹을 심란하게 만드는 장치로 읽었습니다. 마틸다의 갑작스러운 고백 이후 레옹의 표정이 흔들리는데, 그 흔들림이 이후 결말의 선택을 설명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서사 구조(narrative structure)란 이야기의 시작과 중간과 끝이 어떻게 배치되는지를 뜻합니다. 레옹은 이 구조가 독특합니다. 복수극이라는 장르 문법으로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성장 이야기(coming-of-age)의 문법으로 이행합니다. 성장 이야기란 주인공이 경험을 통해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서사를 뜻하는데, 여기서 성장하는 쪽은 마틸다만이 아닙니다. 레옹도 마틸다를 만나기 전과 후가 다른 사람...

영화 쇼생크 탈출 감상 후기 (복선, 영화적 상징성, 각색)

이미지
쇼생크 탈출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그냥 탈옥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 볼수록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장면들이 하나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그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다시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이는 영화, 어떻게 보면 더 잘 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나눠드립니다. 복선 — 레드가 망치를 보고 비웃은 이유 앤디가 레드에게 작은 암석 망치를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레드는 실물을 보고 실소를 터뜨립니다. 이 작은 장난감 같은 도구로 뭘 하겠냐는 표정이었죠. 저도 처음에는 그 장면을 그냥 넘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망치로 벽을 뚫는 데 19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레드의 그 실소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복선(foreshadowing)이란 뒤에 벌어질 사건을 미리 암시해두는 서사 기법입니다. 관객이 처음 볼 때는 그냥 지나치지만, 결말을 알고 나서 돌아보면 비로소 그 의미가 선명해지는 장치입니다. 쇼생크 탈출은 이런 복선을 상당히 촘촘하게 깔아놓은 작품입니다. 레드가 초반부에 군중 속에서 물건을 교환하는 장면도 그렇습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지나가서 처음 볼 때는 알아채기 힘든데, 감옥 안 밀거래의 생태를 보여주는 디테일한 연출입니다. 가석방 심사 장면도 다시 보면 흥미롭습니다. 레드가 20년, 30년, 40년에 각각 받는 세 번의 심사에서 심사관들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첫 번째는 고압적이고, 두 번째는 다소 부드러워지고, 세 번째는 여성 심사관도 배석합니다. 이 변화는 레드의 40년 수감 기간 동안 바깥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사회 변화를 시각화한 셈입니다. 또 한 가지, 레드의 수감 서류에 붙어 있는 젊은 시절 사진은 배우 모건 프리먼 본인이 아니라 그의 실제 아들 알폰소 프리먼의 사진입니다. 알폰소 프리먼은 영화 안에서 신입 재소자들을 위협하는 고참 역할로도 등장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영화에서 각...

영화 스타워즈 프리퀄 감상 후기 (배경, 분석, 전망)

이미지
스타워즈 프리퀄 삼부작이 개봉하던 시절, 저는 아버지 손을 잡고 극장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는 어색한 대사나 과한 CG가 거슬리기보다 그냥 압도당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시퀄 삼부작까지 다 보고 나서 다시 에피소드 1을 틀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이야기의 두께가 느껴지더군요. 프리퀄이 혹평을 받았던 배경 에피소드 1이 1999년 개봉했을 때, 오리지널 삼부작에 대한 기대감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오리지널 삼부작(Original Trilogy)이란 1977년부터 1983년 사이에 나온 에피소드 4, 5, 6을 말하는데, 이미 전 세계 수억 명의 팬이 이 시리즈를 하나의 신화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평가는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프리퀄에 대한 비판은 몇 가지 지점에 집중되었습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연출 스타일, 배우들의 어색한 감정 표현, 그리고 과도한 디지털 특수효과 의존도가 주요 타깃이었습니다. 특히 디지털 특수효과(CGI, Computer-Generated Imagery)란 컴퓨터로 만들어낸 그래픽 이미지를 영상에 합성하는 기술인데, 프리퀄은 이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제가 다시 봤을 때도 그 부분은 솔직히 아직도 걸립니다.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같은 비판을 시퀄 삼부작(Sequel Trilogy)에 그대로 대입하면 어떨까요. 시퀄 삼부작이란 디즈니가 인수한 이후 2015년부터 2019년 사이에 제작된 에피소드 7, 8, 9를 가리킵니다. 이쪽은 CGI가 줄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오히려 세계관의 일관성 측면에서 더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캐릭터의 서사가 편 사이에서 뒤집히고, 복선이 회수되지 않으며, 전편과의 연결고리가 감독에 따라 달라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프리퀄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프리퀄이 실제로 담고 있는 것: 핵심 분석 프리퀄 3부작의 핵심 서사는 아나킨 스카이워...

영화 터미네이터 1편 감상 후기 (1984년 배경, 공포 연출, 저예산 SF)

이미지
터미네이터 2편이 최고라는 말은 영화 좀 봤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거의 정설처럼 통합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1편을 다시 꺼내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640만 달러짜리 이 영화가 어떻게 40년 넘게 살아남았는지,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1984년, 그 배경이 만든 공포 1984년이라는 시대 배경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당시는 CGI(Computer Generated Imagery), 즉 컴퓨터로 만들어낸 디지털 시각효과가 아직 상용화되기 전이었습니다. 지금처럼 화면 위에 무엇이든 그려 넣을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임스 카메론은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다. 실제로 보이는 것, 배우의 움직임, 도시의 어두운 골목, 조명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로 공포를 쌓아 올렸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터미네이터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낯선 남자가 어둠 속 도시를 바라보고, 경찰관의 총과 옷을 빼앗고, 전화번호부를 뒤지며 '사라 코너'라는 이름을 하나씩 지워나갑니다. 관객은 이 남자가 무엇인지 모른 채 그냥 따라가게 됩니다. 그 모름이 공포입니다. 미스터리(mystery) 서사 구조란 정보를 의도적으로 지연시켜 긴장을 축적하는 방식인데, 1편은 이 구조를 SF 장르에 정교하게 접목시켰습니다. 사라 코너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차례로 죽어나가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솔직히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는데, 터미네이터가 실수를 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이 목록을 지워나가는 그 기계적 움직임이 어떤 잔인한 장면보다 훨씬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공포 연출의 핵심, 포인트 오브 뷰 숏 제임스 카메론이 1편에서 가장 영리하게 활용한 기법이 포인트 오브 뷰 숏(Point of View Shot)입니다. 포인트 오브 뷰 숏이란 특정 인물의 눈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촬영 기법으로, 관객이 그 인물의 시각 자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만듭니다. 1편에서는 이 기법...